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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한국 소설 한 권이 국제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SF이자 호러이자 판타지, 그 어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단편집이었다. 정보라의 『저주토끼』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지 몇 년이 지났지만, 2026년 4월 정보라 작가가 로커스상 번역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이름을 올리면서 다시 한번 독자들의 손에 들리고 있다. “예쁘지 않은” 이 소설집이 왜 세계 문학장을 흔들었는지, 지금 읽어도 유효한 이유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저주토끼』는 정보라 작가의 호러·SF·판타지 단편소설집으로, 총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래빗홀 출판사에서 출간했으며, 이후 표제작 결말을 최초 창작 버전으로 복원하고 전반적인 문장을 다듬은 전면 개정판이 나왔다.
10편의 이야기가 공유하는 키워드는 두 가지다. 복수, 그리고 저주. 그러나 이 소설집은 단순한 공포 소설이 아니다. 정보라의 이야기 속에서 저주와 복수는 언제나 ‘이유가 있는 자들’의 것이다. 돈과 권력이 정의인 세상에서 짓밟히고, 호소할 곳도 없고, 법도 편이 아닌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내미는 손. 그것이 이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다.
냉혹한 현실과 기괴한 환상을 자유자재로 겹치는 정보라 특유의 방식은, 독자를 익숙한 일상 속 낯선 공간으로 끌어당긴다. 무섭지만 쾌감이 있고, 기기괴괴하지만 묘한 위로에 가닿는다. 이 역설이 이 책의 힘이다.
〈저주토끼〉 — 표제작
저주용품을 만드는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의 이야기다. 할아버지의 절친한 친구는 좋은 술을 만드는 데만 전념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정치 인맥과 뇌물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그 집안은 경쟁사의 흑색선전에 무너지고, 긴 소송 끝에 완전히 몰락한다. 보다 못한 할아버지는 어여쁜 저주토끼를 손수 만들어 복수에 나선다.
저주는 통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할아버지는 죽어도 죽지 못하는 신세가 된다. 달 없는 밤이면 토끼 전등을 켜놓고 손자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이 세상에서 복수란 무엇이고 정의란 무엇인가를 독자에게 조용히 묻는다. 전면 개정판에서는 이 결말이 작가의 최초 창작 버전으로 복원되어, 분노와 슬픔의 맥락이 더욱 선명해졌다.
〈머리〉 — 모성과 권력의 기괴한 역전
모성과 여성성을 권력 관계로 그려낸 작품이다. 익숙하게 ‘아름답고 희생적인 것’으로 소비되어 온 모성의 이미지를 비틀어, 그것이 실은 또 다른 억압과 결핍의 산물임을 드러낸다. 불편하지만 눈을 뗄 수 없다. 정보라 특유의 페미니즘적 시선이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는 작품으로, 독자들이 이 소설집에서 가장 오래 기억하는 단편 중 하나다.
〈몸하다〉 — 몸과 존재의 경계
〈머리〉와 함께 모성·여성성을 주제로 한 연작처럼 읽히는 작품이다. 몸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기괴한 상황을 통해, 여성의 몸이 타인의 욕망과 시선에 의해 어떻게 대상화되는지를 환상적 방식으로 풀어낸다. 무섭고 낯설지만, 읽고 나면 “이 이야기는 결국 지금 이 세계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다.
2022년 국제 부커상 최종 후보 선정은 단순한 수상 이력이 아니다. 한국 SF가 국제 문학장에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다뤄지기 시작한 사건이었다. 호러·판타지·SF를 넘나드는 장르 혼합 소설이, 그것도 한국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반영한 작품이 세계 독자들에게 공명했다는 것. 이 사실은 한국 문학의 가능성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확장했다.
정보라 작가는 이 소설집 이후 『붉은 칼』로 2026년 로커스상 번역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며 국제 수상 이력을 이어갔다. 『저주토끼』는 그 출발점이다. 정보라 문학을 처음 만나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입문 경로다.
SF, 호러, 판타지 중 하나라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소설집은 전방위로 만족스럽다. 세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어느 한 장르에만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을 즐겨 읽지만 SF 장르는 낯설었던 독자에게도 훌륭한 입문서가 된다. 단편 10편의 호흡이 짧고 밀도가 높아 긴 호흡의 장편이 부담스러운 독자에게도 적합하다.
무엇보다 “왜 세상은 이 모양인가”를 소설로 묻고 싶은 독자에게 권한다. 정보라의 저주와 복수는 허무맹랑한 판타지가 아니라 지금 이 세계의 분노와 슬픔에서 출발한다. 읽고 나면 무섭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정보라 작가의 더 많은 정보는 래빗홀 출판사 공식 페이지(https://rabbithole.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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